15화
아르카눔 탐색,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서
성문 안쪽으로 발을 들인 순간, 현경은 마치 다른 차원의 공기를 들이마신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시끌벅적한 소음의 파도가 그를 덮쳤고, 이전까지의 숲과는 전혀 다른, 문명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매캐한 석탄 연기와 달콤한 향신료, 가죽과 기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뒤섞여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로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덜컹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 말발굽 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묘한 기계 작동음과 마법이 발동하는 듯한 파열음이 간헐적으로 섞여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넓은 돌바닥 광장이었다. 문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붐볐다.
마력으로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형태의 새 모양 골렘이나, 간혹 희미한 마법진을 그리며 떠다니는 작은 부유선 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형형색색의 액체가 부글거리는 유리병,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섬세하게 조각된 작은 골렘, 고대의 문자가 빼곡히 새겨진 양피지 두루마리, 번쩍이는 보석이 박힌 장신구 등을 파는 노점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모든 것이 현경에게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현경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단연 '사람들'이었다.
투박하지만 실용적으로 보이는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녹슨 롱소드를 차고 찌푸린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용병 무리, 온몸을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로브로 감싼 채 수정이 박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거만한 표정의 마법사들, 그리고... 그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존재들이 있었다.
팔 전체가 마치 갑옷처럼 번쩍이는 은색 금속으로 된 사람, 걸을 때마다 금속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는 기계 다리를 가진 사람, 심지어 한쪽 눈 대신 붉은 렌즈가 박혀 기계적으로 빛을 내는 사람까지. 주변의 돌바닥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서, 그 모습들은 마치 잘못 끼워진 그림 조각처럼 눈에 거슬렸다. 현경은 이질적인 모습에 시선이 멈췄다.
'이건... 상상했던 거랑 좀 다른데. 단순히 중세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르군. 저건 대체 뭐지? 기계? 개조인간? 저것도 마법이라고?'
주변 건물들은 대부분 육중한 돌이나 붉은 벽돌로 지어져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은 현경이 알고 있던 어떤 시대, 어떤 장르와도 들어맞지 않았다.
마법과 기계, 고대 유물과 미래적인 기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여 공존하는, 어지러운 모순으로 가득 찬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현경은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눈에 담고 그 안에 숨겨진 질서를 찾으려는 듯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위험해 보였다
"오빠, 괜찮아? 너무 정신없지? 그래도 적응되면 볼거리가 진짜 많아! 나중에 아카데미에 익숙해지고 시간 나면 내가 구석구석 제대로 구경시켜줄게."
어느새 다가온 레나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활기차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와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레나는 마치 수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처럼 익숙하고 활기찬 발걸음으로 현경을 이끌었다.
그녀는 하늘 높이 솟은 마법사 길드의 은빛 첨탑을 가리키며 저곳이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마법 연구 기관이라고 설명했고, 웅장한 석조 건물인 상인 조합 앞을 지나며 아르카눔의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저마다 다른 신을 모시는 듯한 크고 작은 신전들을 지날 때는 잠시 목소리를 낮추기도 했다. 현경은 레나의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귀 기울이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도시의 구조와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까지 머릿속에 각인시키려 노력했다.
"음... 오빠 그렇게 주변을 노려보지 않아도 돼."
"어? 내가 그랬나...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아서 말이지."
"자, 우선 아카데미 생활에 필요한 것부터 사러 가야지! 교복은 당연히 새로 맞춰야 하고, 오빠가 쓸 만한 방어구도 좀 보고... 아, 그리고 비상용 물약도 넉넉히 챙겨둬야 무슨 일이 생겨도 안심이 되니까."
레나는 현경을 데리고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번화가로 들어섰다.
형형색색의 상점 간판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고, 가게 앞에서는 호객꾼들이 목청껏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들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공식 지정점'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상점이었다.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라벤더 향과 함께 잘 다려진 옷감 특유의 냄새가 풍겨왔다. 안쪽 카운터에는 안경을 쓴 중년 여인이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레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나, 레나 양 아니에요! 이게 얼마 만인지! 방학이라 잠시 내려오셨나 보군요?"
"네, 아주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여긴 제 오빠인데, 이번에 저희 아카데미에 편입하게 됐어요. 그래서 교복 좀 맞추려고요."
레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점원과 자연스럽게 안부를 주고받으며 현경을 소개했다.
점원은 신기하다는 듯, 그리고 약간은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현경을 위아래로 꼼꼼히 훑어보았다. 특히 그의 얼굴에 쓰인 투박한 안경에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이내 전문가다운 미소를 지으며 줄자를 꺼내 들었다.
"그러시군요! 카오스포지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자, 이쪽으로 서보세요. 치수부터 재 드릴게요."
레나는 점원과 함께 두꺼운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현경에게 어울릴 만한 디자인과 활동하기 편한 고급 천을 신중하게 골랐다.
아카데미의 상징색인 짙은 남색 바탕에 은색 실로 문장이 수놓인 동복과 하복 몇 벌, 그리고 실내용 예복까지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현경은 그저 점원이 지시하는 대로 팔을 벌리고 돌아서며 묵묵히 치수를 재는 것에 응할 뿐이었다. 마치 마네킹이 된 듯한 어색한 기분이었다.
교복 주문을 마친 후, 다음 목적지는 무기와 방어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도시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상점이었다.
육중한 철문 앞에는 근육질의 경비원 두 명이 버티고 서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교복점과는 전혀 다른, 뜨거운 열기와 쇠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알싸한 약품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다.
벽면에는 번쩍이는 판금 갑옷 세트부터 가볍고 실용적인 가죽 갑옷, 그리고 용의 비늘로 만들었다는 희귀한 갑옷까지 다양한 방어구가 위압적으로 걸려 있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도끼, 육중한 망치, 그리고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마법 지팡이와 보주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전시되어 있었다.
가게 한쪽 구석에서는 웃통을 벗은 거구의 대장장이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풀무질을 하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망치 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오빠는 검(붐크레프트)을 쓰니까, 기동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겠지? 너무 무거운 판금 갑옷보다는 가볍고 방어력 좋은 경갑이 실용적일 거야."
레나는 마치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 모험가처럼 진열된 방어구들을 꼼꼼히 살폈다.
단순히 디자인이나 가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죽의 질감, 이음새의 마감 상태, 움직였을 때의 편의성, 그리고 각 부위에 부여된 마법 효과까지 전문가처럼 확인했다.
"음... 이건 어때? 미스릴 합금으로 만든 얇은 흉갑이 덧대어진 강화 가죽 갑옷인데. 무게는 가볍지만 웬만한 강철 갑옷만큼 튼튼하고, 기본적인 냉기랑 화염 저항 마법도 걸려있네. 활동성도 좋아 보이고."
현경은 레나가 골라준 갑옷을 입어보았다. 자신의 몸에 맞춘 듯 꼭 맞았고,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움직임이 편안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레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갑옷을 입은 채 진열된 다른 물건들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특히 형형색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 즉 물약들이 그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심지어는 검은색이나 무지갯빛 액체까지. 각각 어떤 신비한 효과를 지니고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레나는 현경의 시선을 눈치채고 다가와 설명해주었다.
"저 빨간 건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기본적인 치료 물약이고, 파란 건 소모된 체력 회복에 도움을주는 물약이야. 초록색은 독이나 저주를 해독하는 해독 물약이고. 그 외에도 일시적으로 힘을 강하게 해주거나, 투명하게 만들어주거나, 하늘을 날게 해주는 특수한 물약들도 많은데, 그런 건 엄청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어. 일단은 기본적인 회복 물약이랑 해독 물약을 종류별로 넉넉하게 챙겨두는 게 좋아. 아카데미 실습 중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레나는 마치 자기 물건을 사듯 익숙하게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현경에게 필요한 물약들을 종류별로 여러 개 골라 담았다.
그 모습은 더 이상 현경이 기억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오빠 뒤에 숨기 바빴던 어리고 소심한 동생이 아니었다.
낯선 세계에 먼저 떨어져 홀로 보낸 6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레나는 얼마나 많은 위협과 어려움을 겪으며 이토록 단단해진 걸까. 눈부신 성장이 대견하면서도, 그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세계를 실감했다. 대견함과 동시에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레나가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는 동안, 몇몇 손님들과 상인이 현경의 얼굴, 정확히는 그의 이질적인 머리색을 보곤 노골적으로 힐끗거리거나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 나쁜 시선이었지만, 현경은 애써 표정을 감추고 태연한 척, 진열된 다른 무기들을 살펴보는 척했다. 아직은 자신의 정체나 능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쓸데없는 주목은 피하고 싶었다.
필요한 물품 구매를 모두 마친 후, 레나는 "오빠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현경을 데리고 도시 외곽의 완만한 언덕으로 향했다.
번잡한 시가지를 벗어나자 공기가 한결 상쾌해졌다. 숨이 약간 찰 정도로 언덕을 오르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발아래로는 거대한 아르카눔 시가지가 마치 정교한 미니어처처럼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로는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성채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었다.
수백 개의 첨탑과 건물들이 구름다리와 회랑으로 복잡하게 얽혀 하늘 위로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 혹은 신화 속 거인의 성처럼 보였다.
"저기가... 카오스포지 아카데미야."
레나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지난 2년간 마법을 배우고 친구들을 사귀었던 곳이고, 이제 오빠가 나와 함께 다니게 될 곳이지."
현경은 말없이 숨을 삼키며 거대한 아카데미를 바라보았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했던 지구의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규모와 신비로운 위용이었다. 높이 솟은 성벽에는 푸른빛을 내는 알 수 없는 고대의 룬 문자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강력한 방어 마법의 결계를 이루고 있었고, 가장 높은 중앙 첨탑 꼭대기에서는 응축된 마력이 푸른빛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간혹 아카데미 상공에서는 학생들이나 교수들로 보이는 이들이 날개 달린 기묘한 짐승을 타거나, 등에 마법으로 만든 듯한 날개를 달거나,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적인 탈것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드물게 눈에 띄었다.
아카데미의 장엄한 모습을 충분히 눈에 담은 후, 두 사람은 언덕을 내려와 아카데미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제법 깔끔하고 번듯해 보이는 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 먼지 쌓인 옷을 갈아입은 뒤, 저녁 식사를 위해 여관 1층에 마련된 아늑한 분위기의 식당으로 내려갔다.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닥거리며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고, 식당 안에는 맛있는 스튜와 갓 구운 빵 냄새가 가득했다.
오랜 비행과 낯선 도시 탐색으로 지친 몸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자 굳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듯했다.
식사를 하며 현경은 오늘 아르카눔을 둘러보며 느꼈던 점과, 특히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궁금증에 대해 레나에게 털어놓았다.
"아까 거리에서 봤는데, 팔이나 다리가... 혹은 눈 같은 곳이 이상한 기계 같은 걸로 된 사람들이 꽤 있더라. 그건 대체 뭐야? 무슨 마법으로 만든 건가?"
"아, 메그너스 말하는 거구나?"
레나가 스튜를 한 숟가락 떠 입으로 가져가려다 현경의 굳은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그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마법이라고 하기엔 좀 다르려나? 여기엔 '오파츠'라고 해서, 아주 옛날 고대 문명이 남긴, 지금으로선 원리조차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있거든. 근데 그중에 사람 몸을 기계적으로 바꾸는 기술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야. 그걸..."
레나가 현경의 눈치를 살피듯 잠시 뜸을 들였다.
"키메라 만드는 기술이랑 접목해서, 몸 일부를 기계 장치로 바꾼 사람들을 '메그너스'라고 불러. 엄청난 힘을 원하거나, 아니면 사고로 신체를 잃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 받는 시술이지. 외형 때문에 좀 꺼리는 분위기도 있지만... 그 힘은 진짜 무시무시하거든. 아, 넓게 보면 이것도 '오클러'의 일종이려나."
"오클러...?"
처음 듣는, 어딘가 불길한 울림을 가진 단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귀에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다. 마치 기억 저편, 테리우스의 영혼 어딘가에 희미하게 각인된 흔적처럼.
"응. 오클러는 조금 더 근본적인 거야. 아예 심장을 '마력응집기관'이라는 걸로 바꿔버린 사람들이거든."
레나는 이제 완전히 식사를 멈추고, 현경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눈빛이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 몸에는 원래 '오드(Od)'라는 미미한 생명 에너지가 흐르는데, 그 마력응집기관이라는 게 그 오드를 중심으로 주변의 마나를 엄청난 효율로 빨아들여 뭉쳐내고. 그렇게 모은 마나를... 꼭 반짝이는 동전 같은 결정체로 만드는데, 그게 바로 '오클(Ochl)'이야. 일종의 고농축 마력 배터리 같은 거지."
"오클..."
현경은 저도 모르게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테리우스의 기억 속에서 느껴졌던, 붐크레프트를 다룰 때의 미묘한 이질감의 정체가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클은 아주 순수하고 강력한 마력 덩어리야. 그래서 오빠가 가진 그 붐크레프트 같은 특별한 아티팩트를 제대로 쓰려면 오클이 필요해. 훨씬 강하고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거든. 아마 테리우스 님은 정도되는 분이셔야만 오클 없이 순수 마력만으로 사용 가능할 거야. 물론 있다면 더욱 좋고. 우리 마법사들도 아주 큰 마법을 쓰거나 마력이 부족할 때 비장의 수단처럼 쓰기도 하고. 아... 그리고 케이 님."
레나는 잠시 목소리를 낮췄다.
"그분도 아마 보통이 아닌 오클러일 가능성이 높아. 그분의 힘이나 사용하는 장비들을 보면...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있으니까. 아무튼! 너무 처음부터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고, 차차 알게 될 거야."
레나가 그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 밝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일단 내일 아침 일찍 아카데미 행정처 본관에 가서 오빠 편입 신청서부터 내자. 케이 님이 특별히 준비해 준 추천서가 있으니 별다른 문제 없이 바로 처리될 거야. 서류 내고 나서 내가 아카데미 구경시켜줄게! 본관, 도서관, 연무장, 마법 실습실... 내가 잘 아는 비밀 장소도 몇 군데 있는데, 몰래 알려줄까?"
레나는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신이 난 듯 재잘거렸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내일 아침 일찍 아카데미 행정처 앞에서 만나기로 다시 한번 약속하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수많은 마법 불빛과 가로등이 별처럼 반짝이는 아르카눔의 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현경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천천히 되짚었다.
낯선 도시, 기묘한 기술, 새로운 개념들을 정리가며 잠에 들었다.
아르카눔에서의 첫날 밤이 그렇게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