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르카눔의 그림자, 도적 길드의 초대

카오스포지 아카데미에 편입 신청을 마친 뒤, 현경과 레나는 여관에 머물며 행정처의 연락을 기다렸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아르카눔 시내 구경에 나섰다.

레나는 오랜만에 오빠와 함께하는 자유시간에 들떠, 현경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 신기한 것들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앞장섰다. 그녀의 활기찬 모습에 현경도 마음이 풀린채 따라나섰고, 정신없이 레나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들은 번화가를 벗어나 본래 의도치 않았던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러던 중, 해가 기울어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터에서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거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린 현경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오빠의 변화에 레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골목 모퉁이를 조심스럽게 돌아본 곳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스무 명 남짓, 통일된 문양의 낡은 가죽옷을 입은 무리가 그보다 세 배는 많아 보이는, 복장도 무기도 제각각인 오합지졸 무리를 상대로 팽팽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죽옷 무리는 숙련된 협동과 날카로운 반격으로 오합지졸들의 무질서한 공세를 간신히 맞받아치며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공터는 양측의 고함과 비명, 쉴 새 없이 부딪히는 무기 소리로 가득 차 혼돈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균형은 위태로웠다. 가죽옷 무리 개개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이고 잔혹했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적 우세를 완전히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들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며, 정확하게 급소를 노려 단숨에 숨통을 끊었지만, 그 대가로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챙! 카캉!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부러진 칼날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컥,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누군가 쓰러졌다.

방패를 앞세우며 버티려던 자의 팔은 역방향으로 꺾여 비명을 질렀고, 도망치려던 자의 등에는 여지없이 단검이 꽂혔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잘려나간 팔다리가 뒹굴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진동했고, 공터 바닥은 순식간에 붉은 진흙탕으로 변해갔다.

이 지옥도의 중심에는, 모든 시선을 강탈하는 존재가 있었다.

무리의 선두에서, 마치 검은 연기처럼 적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젊은 청년. 수려한 외모와는 정반대로, 그의 눈빛은 빙하처럼 냉정했고, 양손에 쥔 기괴한 형태의 쌍단도는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렸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신에 새겨진 붉은 문양은 전투의 열기 속에서 피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움직임은 전사들의 정면 돌파와는 달랐다. 그는 결코 힘으로 맞부딪치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내거나, 그림자처럼 등 뒤로 파고들거나, 발을 걸어 균형을 무너뜨리는 등,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교활한 움직임의 연속이었다. 쌍단도는 베고 찌르는 것 외에도, 상대의 무기를 낚아채거나, 관절을 비틀거나, 시야를 교란하는 용도로 현란하게 사용되었다.

"저, 저 개자식...! 어디로 사라진 거야! 뒤에!"

누군가 공포에 질려 동료에게 외쳤지만, 이미 청년의 단도는 그의 목덜미에 박혀 있었다. 외침은 짧은 비명으로 끊겼다.

청년은 마치 거미줄을 치듯, 동시에 달려드는 세 명의 검사를 교묘하게 상대했다.

첫 번째 검사의 내려치기를 칼등으로 받아 흘리는 척하며, 오히려 상대의 팔을 휘감아 중심을 무너뜨렸다. 비틀거리는 검사의 목덜미를 다른 손의 단도가 뱀처럼 파고들었다.

옆에서 찔러 들어오는 창은 피하지 않고 오른손 단도로 창대를 걸어 당겼다. 창에 이끌려 몸이 쏠린 검사의 빈틈으로 왼손 단도가 깊숙이 박혔고, 청년은 그 시체를 방패 삼아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마지막 검사가 동료들의 죽음에 잠시 얼어붙은 순간, 청년은 바닥을 구르며 낮게 파고들었다. 검사의 다리 힘줄을 끊어 넘어뜨린 뒤, 망설임 없이 척추에 단도를 꽂아 넣었다. 으드득, 뼈 부러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교활함과 잔혹함이 뒤섞인 본능적인 살육의 예술에 가까웠다. 적의 수를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에게 극도의 공포와 절망을 심어주며 전의 자체를 꺾어버리는 잔혹한 유희.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비명과 죽음만이 남았다.

테리우스의 기억을 통해 전장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현경조차 눈앞의 광경에 숨을 삼켰다. 테리우스가 겪었던 전쟁과는 또 다른, 훨씬 더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폭력과 살의가 느껴졌다.

'이건... 일반적인 기사들의 싸움과는 다르다. 저 자의 움직임과 사용하는 기술... 제국 기사나 용병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강함이다. 그리고 저 쌍단도... 단순한 무기가 아니야.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현경은 저도 모르게 붐크레프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오빠, 저 사람들... 길드전 같은 게 아닐지도 몰라."

레나의 목소리는 낮아져 있었다.

현경은 싸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단순한 시비가 아니야. 저 가죽옷 입은 쪽,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훈련된 자들이야."

"...혹시 길드전일까? 아카데미에서도 가끔 소문 들었어. 외곽엔 위험한 길드들이 많다고... 저 옷에 새겨진 문양, 어디선가... 혹시 도적 길드 아닐까?"

레나는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도적 길드라면 아르카눔에서도 악명 높은 집단이었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는지, 쌍단도 청년의 압도적인 무력과 가죽옷 무리의 조직적인 움직임 앞에 수적으로 우세했던 무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살아남은 자들은 공포에 질려 무기를 내던지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고, 도적 길드로 보이는 가죽옷 무리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재빠르게 남은 적들을 제압하거나 추격하여 포박하며 전장을 냉혹하고 효율적으로 정리했다.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하는 모습조차 일사불란했다.

소란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청년이 쌍단도에 묻은 피를 무심하게 털어내며 칼집에 꽂아 넣던 순간.

그의 시선이 문득,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현경과 레나가 숨어있는 골목 안쪽으로 정확히 향했다.

빙하처럼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빛과 현경의 시선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남자는 낯선 이들의 등장, 특히 이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현경의 검은 머리색을 보고 아주 잠시 의아한 듯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뿐, 별다른 적대감이나 경계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길 가던 불청객 정도로 여긴 듯, 무심하게 시선을 거두려던 그의 눈길이, 현경의 허리춤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는 붐크레프트에 닿았다.

순간, 남자의 무심했던 눈빛에 희미한 파문이 일었다. 그는 살짝 눈썹을 올리며 현경의 검을 잠시 응시했다. 마치 예상치 못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듯, 혹은 무언가 흥미로운 점을 찾아낸 듯한 짧은 시선이었다. 이전의 냉담함과는 다른, 순간적인 관심이나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이 탐욕인지 단순한 의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곧 그 미묘한 반응마저 지워버린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 짧은 순간의 변화를 현경은 놓치지 않았다.

'방금... 붐크레프트를 보고 눈빛이 변했어. 혹시... 이 검을 아는 걸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꺼림칙한 짐작이 현경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윽고 남자는 뒤따라온 부하에게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짧게 지시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련 없이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 안쪽으로 무리를 이끌고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공터에는 싸늘한 정적과 함께 핏물의 비릿함만이 감돌았다. 현경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붐크레프트를 만지작거렸다. 남자의 마지막 눈빛, 붐크레프트를 향하던 그 미묘한 반응이 뇌리에 남아 꺼림칙한 기분을 남겼다.

'괜히 눈에 띄었나.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저 자에게 감지당했을지도 몰라.'

그 남자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현경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아마 처음 골목에 발길을 들인 순간부터 저 살기 짙은 남자는 두 남매를 감지하고 경계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싶었다.

현경은 왠지 저 남자와는 분명 다시 엮이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레나, 여길 뜨자. 괜히 엮일 필요는 없겠어."

현경은 잠시 상황을 정리하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레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조금 전의 소란이 남긴 어수선한 공터를 벗어나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 현경은 조금 전 보았던 쌍단도 청년과 그가 붐크레프트를 보았을 때의 미묘한 반응,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현경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여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예상과는 다른 인물이 서 있었다. 어제 공터에서 본 거친 도적 길드원들과는 달리, 몸에 딱 맞는 검은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냉철하고 단정한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마치 잘 훈련된 집사나 경호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감정을 읽기 힘든 눈으로 현경과 레나를 훑어본 뒤, 기계적인 동작으로 가볍게 목례를 하며 입을 열었다.

"두 분을 정중히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강압적인 의지는 숨길 수 없었다.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느껴졌다. 남자의 시선은 레나를 잠시 스쳐 지나간 뒤, 곧장 현경에게 고정되었다.

"특히... '키안' 님을 말입니다."

남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현경이 아카데미 편입 신청 시 임시로 사용했던 가명 '키안'을 또렷하게 발음했다. 하룻밤 사이에 벌써 신원 조사를 마친 모양이었다. 도적 길드의 정보망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빠르다는 사실을 현경은 인지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레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사적으로 현경의 앞을 가로막듯 나섰다. 아카데미에서 얼핏 들었던 도적 길드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시죠? 저희는 당신들과는 관련이 없어요. 당연히 따라갈 이유도 당연이 없고요."

"알겠습니다. 안내해주시죠."

레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경이 말을 잘라내며 대답했다.

레나는 놀란 눈으로 현경을 바라보았다.

"오빠! 무슨...!"

현경은 잠시 양해를 구해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 동생과 대화를 시도했다.

"오빠! 어떻게 저런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그래! 안 돼!"

현경은 레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레나, 진정해. 저들은 그냥 온 게 아니야. 어제 그 남자, 내 검을 알아봤어. 여기서 거절한다고 곱게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란 소리야. 피할 수 없다면, 직접 가서 뭘 원하는지 알아내야 해."

레나는 현경의 팔을 붙잡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해 보여...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현경은 그런 레나를 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정했어. 나 혼자 갈 거야."

레나는 눈을 크게 뜨고 현경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혼자 가겠다고?! 오빠, 제정신이야?!"

현경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야. 너는 아카데미로 가 있어. 그리고... 오늘 저녁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카데미에 일을 전해. 넌 아카데미 학생이잖아."

"그런 말 하지 마!"

"어제 그 남자의 살기, 보통이 아니었어. 만약 가지 않는다면. 그자가 어떤 일을 할지 예감이 좋지 않아. 그리고 뭔일 일어난다고 확실한 것도 아니고 만약에 둘 다 잡히면 소식을 전할 사람조차 없게 돼. 네가 밖에 있어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어."

현경의 거듭된 설득과 그의 눈빛에 담긴 무게감에 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국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알았어. 하지만 알아둬. 나 절대 가만있지 않을꺼야."

"응. 알아."

현경은 짧게 대답하며 레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짧은 대화를 마친 현경은 다시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은 아무 말 없이 현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현경은 레나에게 눈짓으로 걱정 말라는 신호를 보낸 뒤, 길드원에게 말했다.

"가시죠."

길드원은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결국 현경은 혼자서, 감정 없는 길드원의 뒤를 따라 여관을 나섰다. 레나는 방 문 앞에 선 채, 그의 뒷모습이 복도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현경이 모습을 감추자 마자 바로 어디론가를 향해 몸을 내달렸다.

한때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했던 아르카눔의 대로변은 이제 그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깊숙한 곳, 햇빛조차 비껴가는 좁고 축축한 뒷골목으로 향했다.

벽과 벽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고,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낯선 정적이 그를 감쌌다.

복잡하게 얽힌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고, 도적 길드의 숨겨진 본거지는 그렇게 현경의 그림자를 삼키고 있었다.

다음 — 18화 : 도적 길드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