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폭주하는 구출 작전

콰아앙-!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도적 길드의 외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두꺼운 석조 벽이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흙먼지가 연무장을 뒤덮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참상. 길드원들이 혼비백산하여 물러서는 가운데, 먼지 구름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과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섞인 듯한 기괴한 구동음.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강철의 괴수. 온몸이 투박한 금속 장갑으로 뒤덮여 있었고, 관절 마디마디에서는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등 뒤에 달린 조잡한 강철 날개는 날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위압감을 주기 위한 장식에 가까워 보였다.

에일린이 자랑하던 걸작, 골렘형 키메라 '메탈 가고일'이었다.

쿵-! 쿵-!

녀석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잘 닦인 연무장의 바닥석이 비명을 지르며 으스러졌다. 육중한 중량감이 지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 강철 괴수의 어깨 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야 이 도둑놈들아! 당장 내놔!"

레나였다.

평소의 침착하고 어른스럽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는 붉은색 마력이 위태롭게 일렁이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웅웅거렸다.

"우리 오빠 어디에 숨겼어! 당장 내놓지 않으면 이 건물을 몽땅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야!"

레나의 외침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이미 벽 하나를 날려버린 전적이 그녀의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고일의 등 뒤, 거친 가죽 안장에 올라탄 에일린이 고글을 쓴 채 광기 어린 표정으로 녀석의 목덜미에 연결된 마력 신경을 제어하고 있었다.

"좋았어! 신경 연결 정상! 폭주 모드 120% 개방! 레나, 지금이야! 다 부셔버려!"

"시끄러워, 에일린! 오빠부터 찾고 부술 거야!"

"아니, 다 부수면 그 잔해 속에 있지 않을까? 확률적으로 그게 더 빨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현경은 입을 떡 벌린 채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뇌가 상황을 처리하지 못해 일시 정지된 것 같았다.

자신을 구하겠답시고 도적 길드 본거지에 공성 병기급 강철 괴물을 끌고 쳐들어온 동생이라니. 이걸 감동적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제정신이냐고 따져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런 걸 어떻게 끌고 온 거야?'

그때, 메탈 가고일의 거대한 강철 팔이 허공을 가르며 휘둘러졌다.

부우웅-!

단순한 휘두름이었지만, 그 무게와 속도가 만들어낸 풍압이 매서웠다. 스치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질 위력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의 대상은 여유로웠다.

"이런, 이런. 성질들이 급하군."

카이론이었다.

그는 가고일의 주먹이 닿기 직전,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냈다. 먼지 구름을 밟고 도약하듯, 그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가고일의 팔 위에 착지했다.

"어린 손님들이라 적당히 대해주려 했더니,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잖아? 남의 벽을 이렇게 박살 내면 곤란하지."

카이론의 입가에는 황당하다는 듯한, 하지만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쌍단도를 뽑지도 않은 채, 뒷짐을 지고 가고일의 팔 위를 걸어 다녔다.

"떨어져!"

레나가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화염 구체(Fire Ball)가 카이론을 향해 쇄도했다.

펑! 퍼버벙!

하지만 카이론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마법을 모두 피해냈다. 고개를 살짝 젖히거나, 어깨를 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불꽃은 허공에서 터지거나 가고일의 장갑에 맞아 검은 그을음만 남겼다.

"제법인데? 마법사의 기본기는 탄탄하군. 하지만 조준이 너무 정직해."

카이론이 혀를 차며 가고일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랐다.

"에일린! 털어내!"

"알았어! 회전 공격 모드!"

에일린이 녀석의 신경에 마력을 쏟아붓자, 가고일의 상체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360도 회전했다. 강철 팔이 팽이처럼 돌아가며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 했다.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카이론에게는 그저 느린 장난감에 불과했다.

"동작이 너무 커."

카이론은 회전하는 팔의 사각지대로 파고들며, 발끝으로 가고일의 무릎 관절을 툭 하고 걷어찼다.

그냥 툭, 하는 가벼운 발길질처럼 보였다.

깡-!

하지만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거대한 강철 괴수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정확하게 무게 중심과 관절의 취약점을 타격한 일격이었다.

"꺄악!"

"어어?!"

가고일이 한쪽으로 크게 기울자, 위에 타고 있던 레나와 에일린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오빠를 돌려줘! 이 나쁜 놈들아!"

레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도 악을 쓰며 다시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물기가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오빠가 잡혀갔다. 그 무서운 도적 놈들에게. 필시 끔찍한 꼴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 하나만이 겁 많은 소녀를 전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카이론은 그런 레나를 보며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 호기심에 손님 좀 모셔왔더니, 무슨 인신매매범 취급이야."

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살기라기보다는, 귀찮은 장난감을 이제 그만 치워버리려는 어른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치워버림'이 저 거대한 고철 덩어리를 고철로 되돌리는 과정이라면, 그 위에 탄 소녀들도 무사하기 힘들 터였다. 카이론의 실력이라면 가고일을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카이론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의 쌍단도로 향했다. 장난은 여기까지라는 신호였다.

현경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만!"

현경이 붐크래프트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튀어 나갔다.

테리우스의 기억이 이끄는 대로, 발놀림은 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했다. 순식간에 먼지 구름을 뚫고 카이론과 가고일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의 외침이 소란스러운 전장을 갈랐다.

"레나! 멈춰!"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자, 악을 쓰던 레나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마법을 준비하던 손길도, 가고일을 조종하던 에일린의 손놀림도 동시에 정지했다.

기계음만이 웅웅거리는 가운데,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현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양팔을 벌려 둘 사이를 막아서고 있었다.

"오... 빠?"

레나가 눈을 비비며 가고일 위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현경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훑어내렸다.

피투성이가 된 모습도 아니었다. 어딘가 부러지거나 잘린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옷매무새조차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

레나의 얼굴이 멍해졌다. 방금 전까지 뿜어내던 살벌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혹감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안... 다쳤어? 고... 고문은? 협박은?"

현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를 짚는 그의 손길에서 진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납치된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냥... 초대를 좀 거칠게 받은 것뿐이야. 넌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냐?"

"하, 하지만... 길드원이 막 칼 차고 와서 협박하듯이 데려갔고... 오빠는 비장하게 혼자 간다고 하고..."

레나가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서... 오빠 구하려고... 에일린한테 부탁해서..."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일의 스케일이 실감 나는 모양이었다. 멀쩡한 길드 건물을 부수고, 괴물을 끌고 난입했다. 오빠가 멀쩡하다면, 이 모든 건 그저... 끔찍한 민폐일 뿐이었다.

그때, 가고일 뒤에서 에일린이 고글을 치켜올리며 불쑥 끼어들었다.

"뭐야? 그럼 상황 끝이야? 데이터 수집은? 나 아직 내구도 테스트 30%밖에 못 했는데? 게다가 저 아저씨 움직임, 데이터로 따기 딱 좋은 표본인데!"

"에일린, 제발 조용히 좀 해봐..."

레나가 황급히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살폈다.

상황이 정리되자, 카이론이 쌍단도에서 손을 떼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 기가 막히는군. 동생 사랑이 아주 지극해? 오빠 하나 구하겠다고 길드 건물을 반파시킬 정도로 말이야."

그는 엉망이 된 연무장 벽과 바닥, 그리고 여전히 증기를 내뿜고 있는 거대한 가고일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거 수리비가 꽤 나오겠는데? 우리 길드가 요즘 좀 힘들어서 말이지."

카이론의 농담 섞인 말에 레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표정이었다. 현경 역시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저기... 그게... 변상을..."

현경이 뭐라 변명하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앙-!

방금 전 레나 일행이 뚫고 들어온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폭발음이 반대쪽, 길드의 정문 방향에서 터져 나왔다.

건물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휘청거렸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벽에 걸려 있던 무기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꺄악!"

레나와 에일린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현경 역시 중심을 잡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뭐야?! 또 너네야?"

카이론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 아니에요! 우리 건 저거 하나뿐인데?! 저건 우리 가고일 출력보다 훨씬 높은데요?!"

에일린이 억울하다는 듯 가고일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때, 피투성이가 된 길드원 하나가 비틀거리며 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쪽 팔이 축 늘어진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위급함을 알리고 있었다.

"마스터! 크, 큰일 났습니다!"

"또 뭔데! 이번엔 누구 동생이냐?!"

"아닙니다! [블러드 팽] 놈들입니다! 놈들이... 총공세입니다! 정문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순간, 카이론의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방금 전까지의 여유롭고 장난기 어린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으며 진짜배기 살기를 뿜어냈다. 주변의 공기 자체가 무겁고 차갑게 내려앉는 듯했다.

현경은 피부를 찌르는 듯한 그 살기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것이 진짜 뒷골목의 지배자, 카이론의 모습이었다.

"호오... 블러드 팽. 이것들이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나."

카이론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현경과 레나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봐, 꼬맹이들."

"......"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라. 지금은 너희들 재롱을 받아줄 시간이 없어졌거든."

카이론은 망토를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썩 꺼져. 내 눈앞에서 안 보이게. 나중에 수리비 청구서 보낼 테니 각오하고."

그 말을 끝으로 카이론은 부하들을 이끌고 폭발이 일어난 정문 쪽으로 질주해 나갔다.

"전원 전투 태세!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와아아아-!"

그의 뒤로 도적 길드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고함을 지르며 우르르 몰려갔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아니 엉망진창이 된 앞마당.

박살 난 벽과 멈춰 선 메탈 가고일, 그리고 현경, 레나, 에일린 셋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칼싸움 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폭발음이 이곳이 전쟁터임을 알리고 있었다.

"......"

세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에일린이 고글을 다시 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우리 그냥 가도 되는 거야? 수리비 진짜 물어줘야 해? 가고일 수리비도 만만치 않은데?"

현경은 멍하니 카이론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더 이상 이곳은 안전하지 않았다.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레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튀자."

"어?"

"여기 계속 있다간 우리까지 휩쓸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뛰어!"

현경의 다급한 외침에 레나와 에일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에일린! 가고일은?"

"당연히 챙겨야지! 비싼 몸이라고!"

에일린이 품에서 주먹만한 크리스털 오브를 꺼내 들었다.

"회수(Return)!"

그녀의 외침과 함께 오브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강철 괴수가 순식간에 빛의 입자로 분해되더니, 마치 빨려 들어가듯 오브 속으로 사라졌다.

"좋았어! 회수 완료!"

"빨리 튀어!"

현경은 오브를 챙겨 넣는 에일린과 멍하니 서 있는 레나의 등을 떠밀었다.

세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뚫린 벽을 통해 도적 길드를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함성, 그리고 무너지는 건물의 진동을 뒤로한 채, 세 사람은 아르카눔의 어둠 속으로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주 요란하고, 시끄럽게.

다음 — 20화 : 폭풍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