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케이의 상념이 무너지고, 그의 의식이 일깨워지며 검붉은 눈이 번뜩인다.

갑작스런 이변.

똑똑똑.

케이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의 출입도 불허하는 방에 그는 침입자를 맞이한다.

그는 무언으로 문을 응시한다.

작동하지 않는 방범 장치. 허락되지 않은 존재 이외의 자들이 침입을 시도할 경우 모조리 이공간으로 던져버리는 간단한 구조를 지닌 그 장치는 이공간 전송 기능을 제외하고도 수색, 은신 파괴, 공간이동 방해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침입자가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접근 가능한 인물은 단 한명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끼이이익....

"케이님! 저 왔어요!"

그러니 이는 침입자가 아니라....

아마 예정 같은 건 제멋대로 깨버리는 소녀, 이 위험천만하기 짝 없는 방에 겁도 없이 당차게 들어오는 소녀.

"...레나."

그녀가 지금 바로, 케이의 집으로 귀환을 마쳤다.

케이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후우... 멋대로 이 방에 들어오지 말라 했을텐데...."

"에헤헤! 그랬죠, 케이님? 그치만 너무 오랜만이라 잠깐 깜박했어요. 히히. 죄송해여. 오랜만에 케이님을 만난다고 생각했더니 너무 기뻐서 그만...."

"됬다." "헤헤"

뭐, 상관없나. 그녀의 이런 변화도 이제는 적응이 됐다.

지금의 그녀에게선 오래 전에 그녀가 품고있던 연약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많이 변한 것이다. 성격도 당돌해 졌고, 낯가림도 거의 사라졌고, 툭하면 울곤했던 버릇도 사라졌다.

이젠 누가 봐도 어엿하고 성숙한 매력적인 숙녀가 되었다.

조금 지나치게 성장하여 가끔씩 대범한 성격을 드러내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변화다.

"그건 그렇고. 도착이 빨랐구나. 편지는 얼마 전에 도착했을 텐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카오스포지 아카데미와 이곳은 거리가 상당히 먼 것으로 알고 있다만."

"헤헤 다 방법이 있죠!"

레나가 유학을 간 곳인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신트락스 제국의 정통파 계열의 엘리트 학원이다.

그곳에선 마법사, 오클러, 키메라 제작 총 3가지 학부에 대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케이가 초대 학원장에게 초기 구도 설립에 도움을 주고 후임인 역대 학원장들이 발달시킨 역사 깊은 교육 체계를 지닌 명문.

요즘 속성으로 오클러만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많은 반면, 이곳은 아직까지 정통 방식대로 체계적이고 착실한 교육을 진행하는 유이한 아카데미다.

그 학생들은 정통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높고, 확실히 정통법 대로 교육한 학생들은 여타의 다른 속성 가르침의 학원생들 보다 더 장기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다 세간에 평가를 받고 있다.

"아! 그것보다 케이님! 정말 케이님은 2년이 지나도 여전한 모습이네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레나는 케이의 질문에 자연스런 미소로 화답하였다. 랄까 그의 질문은 깔끔히 무시 당했다. 아직까지 이 소녀는, 케이의 질문엔 안중이 없고, 오랜만에 만난 케이에 대한 반가움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케이는 알만한 그녀의 마음에, 질문은 좀 더 나중으로 밀기로 생각했다.

"그렇군. 너는 정말 많이 변했구나. 갈수록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니 2년 동안 실력도 일취월장한 모양이군. 이거, 아카데미에서 반하지 않을 남자가 없었겠어. 그래서 레나, 학원 생활은 재미있었나?" "에헴! 당연하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남자들에게는 물론 교수님들한테도 인기 만발이었다구요! 어때여...질투나죠?"

자만스러운 그녀의 발언에 케이는 피식 웃고는 한손을 휘저으며 답한다.

"그래, 너희 오라버니가 너를 만나면 깜짝 놀라겠어...."

"아무렴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다 제 노력의 성과라구요."

'흐음. 만약, 그 놈이 제 동생을 몰라 본다면 꽤 재밌는 상황이 나오겠군.'

물론 돈독한 유대감을 지닌 두 사람이니 그럴 리는 없으리라 케이는 생각했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라면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신비로운 오누이에게는 그런 문제조차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한쪽이 유별나게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 자체가 그러했다.

오빠 쪽은 케이가 좀 싫어하는 자식이지만, 동생 쪽은 아무쪼록 마음에 드는 편이다. 실제로 6년을 알고지내다 보니 사이도 많이 좋아졌다. 이것도 지나치면 좀 그렇지만.

"케이님. 그거 아세요? 곧 있으면 미레아 공주님의 생일이시라구요! 그것도 17살의! 오빠랑 나이가 같으신 거 있죠! 둘이 만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미레아 공주님은 좋으신 분이니까, 분명 누구와도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으실 거에요!"

레나는 무슨 상상을 하는 것인지, 눈동자에 꽃이 동동 피워 올랐다. 저 과대망상의 나쁜 버릇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나 보다. 좋게 달라진 점이 있는 만큼 그 반작용인지,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증상이다.

케이는 뭔가 놀랐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 공주가 벌써 17살이나 됐나...? 그러고보니 꼬꼬마일 때 한번 보고 또 만난적이 없었군. 하긴 3년간 세상사에 소식을 끊고 살았으니...이번 생일은 한번 들려서 선물도 전해 주고, 카가누스에게 안부 인사나 하러 가야겠군." "어라? 케이님, 공주님과 만나신 적이 있으신 거에요? 게다가 카가누스 황제폐하까지?!"

레나가 케이의 이외의 친분에 놀랐다는 얼굴을 하자 케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레나, 적어도 네가 할 말은 아닌 듯 하구나. 일개 학생에 불과한 네가 용케도 공주와 친분을 쌓은 듯 하니. 재주도 좋지."

"저는...!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그 사정이라는 것에 질문을 한표 던지고 싶은 케이였으나, 꺼려하는 표정을 짓는 레나의 얼굴에, 구태여 묻지 않았다.

대신, 슬슬 시간이 다가왔기에, 화제를 전환하는 묵혀두었던 말을 꺼내었다.

"그건 그렇고. 서론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본론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꿀꺽.

레나는 케이의 말에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레나가 아카데미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도중 이곳에 돌아온 본 목적을 잊는 게 아니다. 그건 절대로 잊을 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레나가 그 중요한 사실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6년간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레나가 케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대화를 이어간 것은 반가운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긴장감을 약간이나마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진정할 수 있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을 멈출 수가 있나....... 어떻게─── 겁을 안 먹을 수 있겠나.

6년간 한결같은 목표로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단 한번도 작은 꿈조차 가져볼 수 없었던 레나가 처음으로 꿈꿔보는 미래가 있다.

이제 곧, 그렇게 꿈에서도 그리고그리던 그녀의 친오빠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기대도되고 흥분도 되지만......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겁 먹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움츠러 들 거 없다. 이래봬도, 너희 오라버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긴장은 해도 되지만, 겁 먹는 일이 있어서 되겠느냐."

그녀를 진정시켜 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긴 케이의 말에, 레나는 감동을 받았다.

"네. 케이님의 말씀이 옳아요.... 제가 이래선 안 되는 거죠."

레나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이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빠를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디 오빠랑 같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서 기도한다.

'저...지금 껏 힘내왔어요. 그래도 오빠를 위해 앞으로 더 힘낼께요. 그런데 곧 있음 있게될 만남의 순간만큼은......조금 오빠에게 어리광을 피워도 될까요? 너무 시간이 오래지나 제가 옛날에 어떻게 오빠를 대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기도가 끝나가는 시점에 레나의 눈가에서 또르르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레나가 눈을 떴을 때는, 그녀의 눈동자에 케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케이님은 먼저 나가셨나?"

왜 좀 더 자신을 지켜봐주시지 않으시고 나가셨는지 레나는 섭섭함을 느꼈다.

그녀가 케이와 마찬가지로 이 방을 떠났을 땐, 그녀가 있던 바닥에는 옅은 눈물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쫘아아악!

양손으로 가죽끈을 쭉 잡아당겨 양팔과 가슴 부분을 단단히 조인다. 그러면서 그의 목 부근의 흑비단과 웃옷인 흑장천이 완전히 합쳐지고, 뱀 허물 질감의 검은 가죽 하의가 팽팽히 조여진다. 얼굴을 완전히 둘러싼 흑비단 속에서 녹광 렌즈가 빛나는 헌터 안경이 튀어나오고, 헐렁했던 상의가 조금이나마 조여지니 울룩불룩한 케이의 상체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케이는 선반에 놓여 있는 포켓 가방을 들어 허리춤에 둘러맸다.

이것이 케이가 오클러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장비들의 풀세트다. 전반적으로 검은색만이 보였던 그의 모습에서 이제서야 조금씩 색깔이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전부 칙칙한 색인 건 다름없어 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랜만에 의상을 전부 갖춰보는군."

케이는 여행을 다니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할 때 이외는 이렇게까지 차려입지 않고, 그저 흑비단에 흑장의만 입고 다닌다. 이번에는 굳이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어디 먼 곳에 가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 일은 대충 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케이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케이가 두 주먹을 강하게 부딪치면서 챙하는 소리가 나며 은빛 너클이 양손에 빛을 내며 모습을 들어내고, 그러는 동시에 케이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선 케이는 발걸음을 주춤하였다.

"손님을 데려왔으면 데려왔다고 미리 언질을 해주지 않으면 모른단다."

한탄 섞인 음성을 내고서 그가 바라본 곳은 하늘이었다.

"특이한 손님을 데려왔나 보군."

레나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케이님! 먼저 나가셔서 기다리실 거면 그렇게 하실거라고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그녀가 허리춤에 두 손을 갔다대며, 따지듯이 케이에게 말하자. 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네 말이 맞다. 일이 있다면 미리 말해주어야 하는 법이지."

드물게 순순히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케이의 태도에 레나는 놀랐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고 있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다.

"그리고 허락받지 못한 자는 침입자로서 대한다. 손님은 선구율이 원칙이며, 그렇게 하지 못 할시 가해지는 제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앗! 케이님! 하, 하지 마세요! 지금 저기에 있는 건 제 친구라구요!"

레나는 케이가 뭔가 심상치 않은 짓을 하려는 예감을 느끼자 깜짝 놀라하며 그를 말리려 한다. 허나 아직 케이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허나 이번에는 특례로 넘어가 주도록 하지." "예?"

혹시 방금 들은 얘기가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은 아닌지 몰라 레나는 어벙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케이가 줄곧 시선을 주고 있던 하늘의 한 방향에서 점차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손님이 어느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 어?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레나가 당황해서 버벅거리며 두번 의문을 표한 게 아니다. 단지 놀랄 것이 두가지 있기에 두번 놀란 것일 뿐이지.

"호오..."

케이는 놀라 작은 감탄을 터트린다. 초록빛 렌즈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눈은 휘둥그레 졌을 것이다. 케이는 웬만해선 잘 놀라지도,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크게 놀랐다. 어째서?

화창한 빛의 하늘에서, 환한 빛결을 일렁이며, 공중을 밟고서 하강한다. 역동적이나, 부드러운 발걸음. 그야말로 기품 있는 몸짓.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완벽에 가까운 자태를 뽐내는 모습.

"로열 블러드."

레나는 화를 내지 않고 약간 장난을 친게 아닌가 싶은 케이의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곧 웃으며 그의 말에 화답한다. "운이 많이 따라 주었어요."

"운?"

명문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레나가 2년간 유학을 다녀 온 곳. 그녀는 이곳에서 떠나가며 더욱 성장하여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케이와 나눴다. 그로부터 2년, 그것은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실행되었다.

카오스포지. 그곳의 이름 참 단순히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그곳의 초대 학원장이 최초로 카오스포지라는 페가서스 신종을 제작해 냈다는 명성 때문이다.

페가서스라는 것은, 대귀족들의 종마라 불릴 정도로 귀한 것으로, 결코 운 따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너의 분에 맞지 못할 불운이 있을 것을 걱정하였다. 하지만 과연, 순탄한 학원생활을 지나왔나 보구나."

"예? 제가 얼마나...! 으으...." 레나는 말을 하려다 분한 듯 입을 다물었다.

케이는 예상했었다. 레나가 이상하리 마치 빠른 속도로 카오스포지 아카데미로부터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블루페가서스, 하다못해 그 하급인 레드페가서스라도,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레나가, 적지 않은 고생을 좀 했을 것이라고. 하늘에서 낮선 기척을 느꼈을 때, 대충 확신이 온 것이다.

케이는 정말로 놀랐다. 하얀 날개를 펴치며 고귀한 혈통의 기백과 자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녀석. 너무나 귀히 여겨지고, 노려지는 놈이기에, 자신조차 뜻밖에 상황 속에서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로열 블러드. 그러니까 신트락스 제국의 상징이자 황실 종마라고까지 불리우는 엔젤페가서스.

그것이 지금 바로 케이의 지척에서 경계하는 태세를 갖춘 채 천천히 고도를 낮추어 오며 케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 —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