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어느새 땅에 착지한 엔젤페가서스의 곁에 다가선 레나. 그녀는 부드럽게 엔젤페가서스의 목덜미에 안겨들었다. 평소 같으면 레나가 그렇게 해주면 레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대며 비비적 거렸을 엔젤페가서스는 여전히 케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레나는 그런 녀석을 진정시키려 손끝으로 엔젤페가서스의 미간을 쓰담아 준다.
히이이잉.
머리가 좋은 녀석인지 레나가 그렇게 쓰다듬어 주자, 케이가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챈 듯 태세를 누그러뜨렸다. 아니면 단순히 레나의 손길이 즐거웠을 뿐이거나.
"우리 미카엘 어때요?" "길이 잘 들어 있군. 손질이나 성장세도 매우 좋아 보이고." "귀엽죠?" "빛의 순도가 높아 교단 놈들이 아주 탐을 냈겠어." "멋지죠?" "녀석으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를 환산해 보면, 값을 확정하기가 어렵다. 날개만 해도..." "아이참! 케이님! 그런 게 아니잖아요!"
"...흠. 아직 보지 못 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 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충실히 학원생활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겠군."
"케, 케이님...."
레나는 쑥쓰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희안하군. 신트락스에는 최근 2년간 엔젤페가서스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인물은 없었을 텐데...? 제작자가 누구지?" "미카엘..이요? 그게... 사실 그것 때문에 일이 좀 많았어요... 지금은 조금 진정됬지만, 미카엘도 그것에 관해선 아픈 기억이 많아요. 그런데 케이님은 참 희한한 걸 알고 계시네요?" "신트락스엔 연줄이 있어 크고 작은 소식을 간간히 들을 수 있지."
레나는 케이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미카엘은요... 사실 제가 아카데미에서 사귄 친구에게 제작된 거에요." "친구?"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하려는 레나의 말에, 케이는 위화감을 느꼈다.
"에실라 레젤사라는 친군데..."
"설마, 너와 동학년의 마법사라는 게냐? 놀랍군!"
만약 케이가 알아들은 대로, 레나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케이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페가서스라는 것 자체가 마법사들 중 중급은 가는 제작자들만의 특권인데, 페가서스에 최상위를 달리는 최상급인 엔젤페가서스는 더욱 더 대단하다. 대마법사가 아니면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그 어린 마법사가 그런 위업을 달성하다니. 케이는 그 소녀가 가진 재능과 정신력... 그리고 그 정신력을 초월하는 독기에 감탄했다. 대체 그 아이는 어떤 고단한 삶과 역경의 상황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러한 독기를 속에 품게 되었을까, 한 사람으로서 걱정되었다.
케이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레나를 보았다. 그런데 우물쭈물 아직 말할 것이 남아 있는 듯한 레나의 모습에 케이는 당황했다.
'아직도 더 놀랄 것이 있다는 건가?'
"저기... 케이님. 에실라는 마법사가 아니라, 오클러에요."
"허어-"
케이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설마 19살에 제작자, 그것도 설마하니 오클러라는 직급을 달고서 엔젤페가서스의 제작을 완수하다니! 그것은 정말 기적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고, 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케이는 설마 레나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레나가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니다 보니... 케이는 그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레나여, 방금 너의 말은 내가 직접 카오스포지에 가서 그 아이를 만나고나서 확인하지 않으면 완전히 믿기는 어렵겠구나. 여하튼 지금 들은 것만으로 예삿일이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겠다. 수고했다." "...우음... 예..."
레나는 케이가 자신의 말을 완전히 믿기는 어렵다는 말에 약간 침울해 졌다. 그러나 곧바로 무언가가 떠오른 것인지 다시 기운을 되찾으며 케이에게 묻는다.
"아. 케이님. 케이님은 어떻게 이동하실 생각이세요. 어딜 가야되는지 잘은 모르지만, 급한 거 아니에요? 뭐, 싫지 않으시다면 저와 같이 미카엘을 탑승해서 가도 될 것 같은데...."
"?"
케이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레나가 페가서스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다고. 하긴, 굳이 누군가가 일부러 가르쳐 주는 부분이 아니라 실행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는 거라 모를 수도 있다 여겼다.
"페가서스는 남성은 태우지 않는다." "...예? 정말요?"
레나는 정말 몰랐던 건지 미카엘에게 케이를 태워 줄 수 없냐고 직접 물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레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주 싫다는 듯 경기를 일으킨다. 어찌나 싫은 건지 케이가 지금 1센티미터라도 가까이 오면 공격할 기세다.
"우웅. 그럼 어떻게해요." "그런 걸로 내 걱정을 하다니 쓸데없는 짓이다. 나는 나만에 방법이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미카엘에 올라타라. 어서 출발하자." "그치만... 케이님이랑 같이 페가서스를 타고서 날아보고 싶었는데...."
레나는 아쉬운 표정을 짓었는데, 솔직히 케이는 왜 그런 것으로 레나가 아쉬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케이로서는 레나의 저런 표정을 두고 보기 좋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케이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굳이 그렇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말이에요!?"
레나가 케이의 말에 기뻐하는 동시에, 미카엘이 같이 반응을 했다. 미카엘은 이제 케이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심했는데, 케이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면서 또 다시 케이가 자신의 등에 올라 탄다는 얘기가 나온 줄 알고 방금 전보다 더 크게 케이를 경계했다. 아예 그보고 움직이지조차 말라는 듯.
케이는 그런 미카엘 행동을 무시하고, 허리춤에 달린 포켓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서 무슨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 물건은 영롱한 빛을 띄고 있는 검은 구슬이었다. 구슬의 안에 희미하게 무슨 형태가 그려져 있는데, 그 형태는 케이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레나가 호기심에 그것이 무엇이냐 질문을 했다.
"별 건 아니다. 오브라는 것이지." "오브? 오브면, 설마 소환 오브를 말씀하시는 거에요?" "오브를 아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건 좀 특수한 오브니까. 잘 봐둬라."
케이가 오브라는 것을 바닥에 던지자, 오브는 형체를 잃고 흑연기를 태우며 지면에 녹아 들었다.
이때 미카엘이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같고, 왠지 케이와는 달리 정말로 무언가를 적대시하는 느낌이었다. 레나는 미카엘의 그 모습에 '미카엘은 무언가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호기심이 일었던 검은 오브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는데, 레나는 오브가 일으키는 작용을 지켜보는 와중에 팔꿈치 안쪽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 발걸음을 물러선 레나를 포착한 케이는 말한다.
"그렇게 무서워할 거 없다. 조금 특별한 액션이 있을 뿐이니."
안심시키는 케이의 말에 레나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일단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에 오브가 녹아든 지면에 완성된 마법진이 빛을 뿜어내며, 어두운 빨강과 보라색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자욱한 검은 연기와 빛나는 입자들이 피어올랐고, 밝은 마젠타와 핑크색 번개가 탁탁거리며 공간을 가르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미카엘이 격노하는 울음소리를 내는 그때! 검은 연기와 마젠타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꺄아아아악!"
레나도 비명을 지른다.
겁 먹어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레나는, 금세라도 거칠게 자신을 습격할 것 같던 존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오는 것 같지가 않자, 슬며시 눈을 뜨며 앞을 살펴보았다.
"에? 저건...!"
그러자 레나는 당황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자신이 검은색과 흰색을 헷갈리는 특수한 색맹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칠흑같이 검은 털과 불타는 듯한 붉은 눈동자, 거대한 검은 날개를 가진 페가서스가 앞발을 들어 올린 역동적인 포즈로 케이의 곁에 나타났다. 그의 발아래에는 어두운 빨강과 보라색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며 소환 포털처럼 빛나고 있었고, 주변에는 어두운 연기와 빛나는 입자들이 피어올랐다. 밝은 마젠타와 핑크색 번개가 탁탁거리며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순흑의 날개와 몸통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마젠타와 핑크색 룬 문양이 새겨져 있어, 마치 맥박 치는 마력 회로처럼 보였다. 그의 검은 갈기와 꼬리에도 같은 마젠타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단순한 검은 고삐와 끈만 착용하고 있었고, 화려한 안장이나 갑옷은 없었다.

미카엘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순백색 몸체에 금색 갈기를 등체에 두르고 있는 미카엘과 달리, 검은색 몸체에 빨간 갈기가 있는 대체로 미카엘과 반대되는 이미지를 지닌 검은 페가서스가 케이의 곁에서 정겹게 애교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레나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중이면서도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님... 그 아이는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레나가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에 추궁하는 듯한 어조를 담아 케이에게 물었다. 그녀의 생각이 몹시 어지럽다는 증거였다.
케이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별 거 아니라 했지 않느냐." "...케-이-니임!"
"네가 오랜만에 왔는데 날 놀래켜 주려고 많이 준비한 거 같아서 말이다. 조금 보답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지." "...예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미카엘이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바로 나올 수가 있죠?" "이건 이면소환이라는 것이다... 뭐. 이름은 대충 루시퍼. 그 정도로 해둘까." "...예에?"
케이는 새롭게 탄생한 엔젤페가서스(이면소환)의 이름을 간단하게 루시퍼라 지었다.
루시퍼는 미카엘을 소재로 탄생한 새로운 종의 엔젤페가서스다. 루시퍼와 미카엘은 겉면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도 전면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사용되는 기운이나 생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루시퍼가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이면소환이라는 특수한 형식에 의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면소환이라는 것은 이름에서 나오는 뜻 그대로 미카엘의 숨겨진 혹은 존재하지 않는 다른 모습을 소환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화 시킨 것을 뜻한다.
레나는 아직도 케이에게 더 묻고 따지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케이가 바로 루시퍼의 등에 올라타며 출발을 외치자, 레나 또한 급하게 미카엘의 등에 올라 타 케이의 뒤를 쫓아갔다.
===========================================
"헉!"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
그는 완전히 생경한 환경과 마주해야만 했다.
숨을 거세게 들이키며 흐트러진 시야가 초점을 좁혀가고 선명해지며 주변의 빛을 모아 의식에 배경을 비추었다.
불타는 대지.
끝없이 타오르는 붉은 화염이 대지를 핥아먹고 있었다.
그 열기는 피부를 태우는 듯했고, 공기 자체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다.
지은 죄의 수많큼 고통받아 귀곡성을 울부짖는 흐릿한 형체들. 그들의 비명은 귓가를 찢을 듯 날카로웠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들은 현경의 영혼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들은 마치 영원한 형벌을 받는 듯 몸부림치며 불길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힌 공간. 위를 올려다보면 검붉은 대지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타는 하늘이 보였다. 중력의 법칙조차 무시된 이 기괴한 세계에서 현경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피와 유황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멀리서는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분명 인간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
지옥.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라 부를만한 곳이었다.
마지막 기억 이후로 그는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떠오른 생각은 마지막 순간 속으로 빌었던 염원.
동생만은 살려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빌었던 소원.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좋으니 제발 동생을 도와달라 빌었던 소망.
그래서 그런건가.
그는 돌연 지옥에서 눈을 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