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속전속결 편입 시험과 묵직한 체술

새벽녘의 차가운 서리가 아르카눔 외곽 석조 도로 위로 얇게 내려앉은 시각.

에일린의 마도 공방 2층 좁은 단칸방.

현경은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었다.

품속에서 꺼내어 든 두꺼운 양장 봉투.

투바의 숲 오두막을 떠날 때 케이가 직접 건네주었던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정식 편입 서류였다.

서류 중앙에 선명하게 새겨진 흑경 케이의 붉은 영식 인장.

그 아래 지정된 편입 시험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눈을 비비며 일어난 레나가 현경을 건너다보았다.

"오빠, 벌써 시험 치르러 가려고? 흑경 님 추천서 잘 챙겼지?"

"응, 품속에 잘 챙겨뒀어. 늦기 전에 얼른 다녀올게."

현경은 안경을 고쳐 쓰며 어깨에 두꺼운 천으로 둔탁하고 꽁꽁 감싸맨 붐크레프트를 묵직하게 짊어졌다.

"시험 잘 치르고 올 테니까, 레나 너도 전공 수업 조심히 잘 다녀와."

"응! 오빠, 실기 시험 잘 치르고 와. 난 아침 전공 수업 준비해서 아카데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레나의 안도하는 응원을 뒤로하고, 에일린의 공방을 나서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본관으로 향하는 길.

길가에 세워진 마도 아티팩트 가로등들이 새벽 안개 속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현경은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다란 석조 다리 아래로는 아르카눔을 가로지르는 마도 운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하 수면 위로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이른 아침의 마도 운하 위로 차가운 바람이 흩어졌다.

석조 다리를 지나는 동안 현경은 자신의 어깨에 메어진 붐크레프트의 묵직한 하중을 느꼈다.

수메르로의 수호 기사 테리우스가 목숨과 바꾼 검.

그리고 가슴 깊은 곳 지옥로의 정적.

이 모든 힘을 숨긴 채 카오스포지 아카데미라는 낯선 기착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다리를 건너서자 거대한 아치형 검은 석조 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문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청동 마도 골렘이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현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잉-

골렘의 눈에서 피어오른 붉은 룬 마력이 현경의 편입 안내서를 훑었다.

달칵.

안내서의 룬 문양이 붉게 응답하자 청동 골렘이 차분하게 수긍하며 입구를 열어주었다.

"키안 지원자. 편입 대기실 복도를 따라 직진하십시오."

기계적인 골렘의 안내음이 석조 관문 안에 울렸다.

현경은 대기실로 이어지는 깊은 아치형 석조 복도를 차분하게 걸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이른 새벽의 석조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도 구동음의 나직한 진동만이 차가운 공기를 감쌀 뿐이었다.

다른 지원자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클러 학과의 이번 편입 시험은 흑경 케이의 붉은 영식 추천서로 개설된 단독 비공개 편입 시험이었다.

일반 지원자들이 치르는 수백 명 규모의 공개 시험과는 전혀 다른 정막한 분위기였다.

현경은 서늘한 정적이 감도는 접수대를 향해 차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느껴지는 붐크레프트의 묵직한 무게감.

수메르로의 수호 기사 테리우스가 남긴 검.

천으로 감싸두었다 한들 그 무게와 기운을 온전히 감추기 어려운 기물이었다.

현경의 가슴 깊은 곳.

그곳에는 평범한 오클러들이 이식받은 지극히 평범한 마력응집기관 따위가 들어있지 않았다.

헬켈베로스와 신체가 불완전하게 융합되며 심장 부근에 자리 잡은 고대 신화급 기물, 지옥로.

만약 정밀 측정 마도구 앞에 섰다가 지옥로의 정체가 발각된다면...

편입은커녕 제국 상층부의 비밀 연구실 해부대에 곧바로 올려질 터였다.

그렇기에 현경은 몸 안의 마력을 단 한 톨도 피워 올리지 않았다.

마동음조차 내지 않은 채 무심하게 서 있었다.

테리우스의 기억 속 수메르로의 참혹했던 멸망.

그리고 흑경 케이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의 궤적.

그 모든 것들이 현경의 내면에서 묵직하게 조율되고 있었다.

석조 대기실 중앙의 구리 통로 너머.

행정관의 서류 넘기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사스락. 사스락.

"다음. 키안 지원자."

접수대에 앉아 있던 오클러 학과 수석 행정관의 목소리였다.

건조하고 딱딱한 음성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현경은 어깨에 멘 천 뭉치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차분하고 신중한 발걸음으로 행정 접수대 앞으로 다가섰다.

"편입 서류를 내놓으십시오."

행정관이 건조하게 말했다.

현경은 가슴 품에서 전보 골렘에게 받은 양장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접수대 뒤편 높은 의자에 앉은 수석 행정관.

그는 매서운 눈매로 현경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천으로 꽁꽁 싸맨 길쭉한 무기.

마력 응결 흔적이 전혀 없는 무심한 태도.

행정관이 펜을 들어 서류 항목을 체크하며 입을 열었다.

"키안 지원자. 오른편의 오클 응결 측정관 앞으로 다가서서 가슴의 응집기관을..."

행정관의 말이 툭 꺼졌다.

현경이 내민 서류 봉투를 개봉해 훑어보던 손길이 딱 멈추었다.

서류 맨 뒷장에 덧붙여진 두꺼운 양장지.

그 중앙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영식 인장.

칠흑 같은 마력 잔향이 감도는 친필 서명.

그것을 확인한 순간 행정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행정관은 서둘러 책상 위의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돋보기를 통해 인장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궤적을 재확인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제국 최강자, 흑경 케이의 정식 추천서였다.

접수대 주변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은 듯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본래 오클러 학과의 편입 수속이라면 누구나 오클 응결 측정기 앞에 서야 했다.

심장 부근의 마력 수치와 1분당 생성 개수를 엄격하게 검증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흑경의 개인 보증이 붙은 서류였다.

그런 지원자의 가슴에 함부로 측정 마도구를 대는 것은...

흑경의 안목과 권위를 정면으로 불신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행정관은 서류를 쥔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었다.

아르카눔 전체를 통틀어 흑경 케이의 붉은 영식 인장을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이 지원자가 오클을 얼마나 생성하든 상관없었다.

흑경 케이가 직접 보증하여 보내온 인물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모든 행정적 절차를 압도하고 있었다.

행정관은 돋보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류를 정돈했다.

현경은 행정관의 동요하는 눈빛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행정관은 붉은 직인을 서류 위에 내리찍었다.

쿵-!

선명한 붉은 인장이 서류 위에 새겨졌다.

"기초 오클 생산량 및 응결 검사는 흑경 님의 보증에 따라 비공개 인정으로 대체합니다."

행정관의 무거운 통보가 이어졌다.

현경의 눈빛이 차분하게 진정되었다.

지옥로의 정체가 들통날 뻔했던 첫 위기.

그것이 흑경 케이의 이름 하나로 안전하게 무사 통과된 것이다.

행정관이 서류를 정돈하여 현경에게 내밀었다.

"곧바로 3번 실전 전투 시험장으로 이동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현경은 서류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 3번 시험장 통로를 향해 무심한 발걸음을 옮겼다.

석조 아치 통로를 지나자 차가운 바람이 현경의 뺨을 스쳤다.

3번 대련장은 까마득하게 높은 검은 슬레이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외부와의 마력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는 구역이었다.

벽면에 걸린 마도 횃불들이 조용히 푸른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현경은 서늘한 대련장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발걸음 소리가 석조 바닥을 따라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대련장 중앙에 다다르자 결계 장막이 웅웅거리며 현경의 주변을 감싸 쥐었다.

외부와의 모든 마력과 정보 개입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고강도 전투 결계였다.

현경은 어깨에 멘 붐크레프트를 잡고 조용히 대련장 건너편 철창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대련장 바닥의 흙먼지를 작게 피워 올렸다.

고강도 전투 결계 장막이 푸른 빛을 번뜩이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대련장 전체에 서늘한 긴장감이 자욱하게 들어찼다.

현경은 신체 중심을 나직하게 낮추었다.

바닥 석판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조차 멎은 정적 속.


콰구구구-!

두꺼운 석조 철창이 위로 올라갔다.

넓은 실전 대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이 고강도 마도 결계 장막으로 차단된 서늘한 대련장.

바닥에는 이전 시험의 묵직한 마찰 흔적들과 파여나간 석판 자국들이 흩어져 있었다.

높은 관람석 위.

오클러 학과 실기 시험관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테 단안경과 깃펜을 든 채 시니컬한 눈빛을 뿜고 있었다.

시험관들은 흑경의 개인 추천 서류를 확인했다.

묵직한 침묵 속에 현경을 유심히 주시했다.

"흑경 님의 추천으로 생산량 검사를 통과한 자인가. 어째서 오클러 학과로 지원을 넣은 거지?"

"일단... 기초 검사를 넘겨받았으니, 실전 무력이라도 확실히 증명해 보여야 할 텐데."

시험관들의 서늘한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 순간.

대련장 반대편 철창이 거칠게 찌그러졌다.

실습용 훈련 마수가 난입했다.

캬아아아-!

온몸이 두꺼운 강철 장갑과 마도 아티팩트로 개조된 고위 키메라 마도 수인.

마수는 붉은 안광을 부릅뜨며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곧바로 현경의 목덜미를 향해 흉흉한 속도로 쇄도해 왔다.

콰다다닥-!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에 바닥 석판이 파여 나가며 비산했다.

현경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천으로 꽁꽁 묶인 붐크레프트를 검집째 느릿하게 비틀어 쥐었다.

마력도, 오드도 일절 내뿜지 않았다.

지옥로의 마력을 철저히 억누른 채 서 있었다.

오직 머릿속에 각인된 테리우스의 기체 체술.

그리고 수호 기사적 신체 중심 감각만을 가동했다.

투콰아앙-!

마수의 날카로운 쇠발톱이 현경의 턱밑을 갈라버릴 듯 육박해 온 그 순간.

현경의 신체가 마찰음을 내며 움직였다.

단 한 끗 차이로 마수의 공격 궤적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천으로 싸인 붐크레프트의 묵직한 검집 자루가 파고들었다.

마수의 들썩이는 하중 중심축과 관절 구동부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콰직-!

둔탁하고 아스러지는 파열음.

현경은 마력을 얹지 않았다.

오직 테리우스의 완벽한 지경에 달한 신체 중심 이동과 악력.

그것만으로 마수의 관절 조인트를 비틀어 꺾어버렸다.

"크아아악?!"

마수는 자신의 엄청난 체중과 쇄도 속도를 주체하지 못했다.

무릎이 나간 채 바닥으로 요란하게 처박혔다.

현경은 차분하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천에 싸인 검집 자루로 마물의 척추 구동부를 둔탁하게 툭 내려쳤다.

콰앙-!

그 단 한 번의 묵직한 파쇄 타격.

중장갑 마수의 구동 마도구가 완전히 정지했다.

마물은 대련장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검도 뽑지 않았다.

단 8분 만에 상황이 완벽하게 끝났다.

대련장 안에는 마수의 거친 숨소리와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관람석의 시험관들은 마력 수치가 미측정된 기록지를 보며 펜을 멈추었다.

마력이나 오클을 일절 내뿜지 않았음에도...

고위 훈련 마수를 단단하고 압도적인 아티팩트 체술로 꺾어버린 상황.

시험관은 수다스러운 해설이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묵직하게 현경의 서류에 묵직한 직인을 쿵 찍었다.

"마력 응결 미측정. 소요 시간 8분 42초."

시험관이 현경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건조하게 덧붙였다.

"...합격입니다."

현경은 천으로 싸인 붐크레프트를 어깨에 묵직하게 고쳐 메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3번 대련장을 빠져나왔다.

석조 대련장을 벗어나는 현경의 등 뒤로 아침 햇살이 길게 비쳤다.

시험관들의 시선이 여전히 그의 뒷모습에 남아있었다.


대련장 출구를 지나자 카오스포지 아카데미 본관 웅장한 중앙 대강당 로비가 펼쳐졌다.

높은 아치형 대리석 기둥들이 끝없이 솟아 있고, 그 아래로 이른 아침 전공 수업을 들으러 이동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법사 학과의 은빛 제복.

기사 학과의 붉은 가죽 갑주.

키메라 술사 학과의 어두운 녹색 로브.

그 수많은 제복차림 학생들 사이.

은빛 마법사 학과 제복을 입은 레나가 로비 대리석 기둥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레나는 3번 대련장 출구를 초조하게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출구를 빠져나오는 현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레나의 얼굴에 활짝 반가운 빛이 차올랐다.

"오빠!"

레나가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시험 벌써 끝난 거야? 어떻게 됐어?"

걱정 반, 기대 반이 섞인 레나의 목소리.

현경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서류를 보여주었다.

서류 맨 아래 찍힌 선명한 붉은 합격 직인.

레나가 서류를 확인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아... 다행이다! 흑경 님 추천서가 있어도 실기 시험은 워낙 악명 높아서 엄청 걱정했거든."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없었어. 마력은 한 톨도 안 쓰고... 그냥 몸으로 살짝 받아쳐서 무사히 끝냈거든."

"거봐! 오빠라면 단번에 통과할 줄 알았어."

레나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그럼 일단 오클러 학과 동관 기숙사 수속부터 마쳐! 난 아침 전공 수업 들으러 가봐야 해서... 점심 때 맞춰서 오빠 방으로 놀러 갈게!"

"응, 그래. 수업 조심히 잘 다녀와."

레나가 환하게 손을 흔들며 마법사 학과 강의동 쪽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현경은 어깨의 검집을 묵직하게 다잡았다.

손에 쥔 붉은 합격 직인이 찍힌 양장 서류.

서류 아래쪽에 새겨진 안내 표지판 화살표가 오클러 학과 동관 기숙사 창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첫 번째 시험은 무사 통과다.'

지옥로의 마력도, 붐크레프트의 붉은 룬도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신체 중심 이동과 테리우스의 체술만으로 얻어낸 완벽한 합격이었다.

현경은 기숙사 창구를 향해 차분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 22화 : 오클러 학과 입성과 숨겨둔 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