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멸망의 날개
데블이터는 [아귀의 창]을 고쳐 잡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창끝에 헬켈베로스의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놈의 기세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흉포해진 눈빛으로 데블이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데블이터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헬켈베로스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힘 싸움이 아니었다. 그는 현란한 창술과 악마적인 민첩함으로 헬켈베로스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창은 뱀처럼 휘어지며 헬켈베로스의 빈틈을 파고들었고, 거대한 날개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놈의 시야를 교란했다.
챙! 카강! 퍼억!
날카로운 파열음과 둔탁한 타격음이 쉴 새 없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데블이터의 창이 헬켈베로스의 단단한 가죽을 뚫고 상처를 입힐 때마다, [아귀의 창]의 마력 봉인 효과가 발동되어 놈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둔화되었다.
크아악!
헬켈베로스는 고통과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세 개의 머리로 동시에 지옥불을 토해냈다. 광장 전체를 뒤덮을 듯한 화염의 파도가 데블이터를 향해 밀려왔지만, 데블이터는 비웃듯 날개를 펼쳐 화염을 가르며 돌파했다.
"그런 공격은 이미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화염 속을 뚫고 나온 데블이터는 그대로 헬켈베로스의 중앙 머리를 향해 창을 내리꽂았다!
퍼스걱!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창은 헬켈베로스의 머리 정수리에 깊숙이 박혔고, 마력을 봉인하는 백색의 기운이 상처 부위에서 퍼져나가며 놈의 힘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헬켈베로스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데블이터를 떨쳐내려 했지만, 창은 빠지지 않았다.
"이제 끝이다, 흉물!"
데블이터는 승리를 확신하며 창에 더욱 강력한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대로 놈의 마력을 완전히 봉인하고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헬켈베로스의 저항은 예상보다 거셌다. 아니, 무언가 달랐다. [아귀의 창]에 꿰뚫린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질이 변화하고 있었다. 마치 억눌렸던 무언가가 깨어나려는 듯, 놈의 몸에서 불길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칫... 아직도 발버둥 치는 건가!"
시간이 없었다. 케이의 질책을 떠올린 데블이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네놈이 마수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걸로 끝장을 내주마!"
데블이터는 창을 회수하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의 찢어진 아가리가 상상 이상으로 크게 벌어지며, 주변 공간마저 왜곡시키는 듯한 어둠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월면식(月緬蝕)]!
그의 권능, [불가식]의 힘을 응축시킨 최대 기술. 데블이터의 입안에 열린 이공간이 강력한 흡인력으로 헬켈베로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헬켈베로스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이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데블이터의 입 주변에는 부서진 [아귀의 창] 파편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떠다니며, 흡수되는 대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데블이터의 마력 봉인 창날에 의해 마수에게는 절대적인 죽음을 선사하는 공간이었다.
"크하하! 어떠냐!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데블이터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이공간으로 거의 다 빨려 들어간 헬켈베로스의 몸에서 섬광과 함께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놈의 붉은 눈동자가 기묘하게 빛나며, 마치 '마수가 아니면 된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리고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변화가 헬켈베로스의 생존본능에 의해 발현되었다. 그와 동시에 헬켈베로스는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존재'를 지옥로의 핵인 가마솥에 억지로 끌여들여 흡수시켰다.
그리고 [폼 체인지] 그것은 일어났다!
"뭣...?!"
데블이터는 경악했다. 케이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헬켈베로스가 이런 고급 변형술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순식간이었다.
거대한 지옥개의 형상이 검붉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칠흑 같은 머리카락과 핏빛 눈동자를 가진 인간 형상의 존재가 나타났다. 그가 입은 화려하고 이질적인 옷은 이 참혹한 폐허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변신과 동시에 인간형 헬켈베로스는 월면식의 흡인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떨쳐내며 데블이터의 앞으로 나섰다. 그의 움직임에는 이전의 짐승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말도 안 돼...!"
데블이터가 경악하는 찰나, 인간형 헬켈베로스의 손이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푸슉!
"커헉...!"
날카로운 손톱이 데블이터의 복부를 깊숙이 관통했다. 데블이터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이고,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월면식을 유지하던 힘이 사라지고, 이공간은 허무하게 닫혔다.
데블이터의 월면식은 마수를 사냥하는 힘 극카운터의 힘. 마수가 아닌 존재에게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는 피를 쏟아내며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충격과 고통,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만이 가득했다.
"흐음-... 이게 육성으로 내는 내 목소리인가.... 좋군."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데블이터를 내려다보며, 감미로우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목소리가 폐허가 된 광장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방금 전까지 거대한 지옥개였던 존재, 이제는 칠흑 같은 머리카락과 핏빛 눈동자를 가진 인간 남자의 모습을 한 헬켈베로스였다. 그가 입은 화려하고 이질적인 옷은 이 참혹한 폐허와는 어울리지 않게 고고해 보였다.
데블이터는 마수를 상대로 우위를 차지하기에 자만하다가 그렇게 순식간에 패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애처롭게 케이를 향해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케이님... 용서를..."
케이는 싸늘한 눈으로 그의 변신과 사라진 데블이터의 흔적, 그리고 헬켈베로스를 지켜보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그의 기색엔 큰 동요가 없었다. 다만,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헬켈베로스의 기운을 감지한 듯,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헬켈베로스... 아니, 그 모습은 단순한 키메라의 것만이 아니로군. '매개체'의 영향인가."
케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인간형 헬켈베로스를 향한 경계심과 함께, 상황을 살피는 탐색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나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인간형 헬켈베로스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에는 이전의 맹목적인 광기와는 다른,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너... 케이라 했던가? 네놈은 내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운 존재였군. 이런 시골 구석에 처박혀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야."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이전의 야수적인 광기 대신, 상대를 시험하고 평가하는 듯한 교활함과 지적인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케이가 차갑게 받아쳤다.
"쓰러진 네놈의 장난감부터 처리하는 게 순서 아닌가?"
케이가 턱짓으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데블이터를 가리켰다.
"흥. 저런 하찮은 것을 먹어치우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이 고상한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지."
헬켈베로스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전의 짐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다소 과시적인 몸짓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케이가 말없이 손짓하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데블이터의 육신이 검붉은 빛의 구슬(오브)로 변해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케이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호오. 하지만 네놈은 다르다. 네놈의 힘은 꽤나 맛이 좋을 것 같군. 네놈을 먹어치우고,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헬켈베로스는 그 모습 보고 흥미롭다는 듯 케이를 보고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헛된 망상이다."
케이는 헬켈베로스의 오만한 선언을 비웃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매개체를 얻은 것으로 고작 그 정도인가."
케이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결국 네놈은 내가 만든 피조물일 뿐. 창조주에게 칼날을 겨눈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뭐라고...? 네놈이... 내 창조주라고? 허튼 소리..."
헬켈베로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케이가 내뿜는 압도적인 기세에 불안감이 그의 눈빛을 흔들었다.
케이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할 때였다.
촤아아아악!
케이의 등 뒤에서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칠흑 같은 깃털 하나하나에 심연의 마력이 응축된 듯, 날개는 주변의 빛을 집어삼키며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변질된 듯,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하고도 불길한 기운이 광장 전체를 뒤덮었다.
"그... 그 날개는...! 네놈, 대체...!"
헬켈베로스는 케이의 갑작스러운 변모에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가 아는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가 눈앞에 서 있었다. 케이의 검은 날개는 단순한 마법이 아닌, 그의 근원적인 힘의 발현이었다. 그의 온몸이 이해할 수 없는 공포와 함께 기묘한 전율에 휩싸였다.
"크윽...!"
헬켈베로스는 본능적인 위협감과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어둠의 기운이 그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듯했다.
하지만 케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날개가 완전히 펼쳐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칠흑 같은 어둠의 파동이 케이의 몸에서 흘러나와 헬켈베로스를 향해 쏘아졌다. 그것은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는 속도였다.
"오...오오...!"
헬켈베로스는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아니,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어둠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듯한 기묘한 자세를 취했다. 그의 눈에는 경악과 공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희미한 감격마저 서려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직!
칠흑 같은 어둠의 파동이 헬켈베로스의 몸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그대로 광장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빛을 잃었고, 미동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어둠의 힘이 그의 존재를 꿰뚫고 지나가며 즉각적인 죽음을 선사한 것이다. 화려했던 옷은 여전히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이제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일 뿐이었다.
케이는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폐허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는 쓰러진 헬켈베로스의 시신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하아... 이 힘은 쓰고싶지 않았거늘...."
지금 이 힘을 발휘한 탓에 교단 쪽의 인간들 사이엔 큰 소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너무나 격이 다른 마력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허나, 이곳, 수메르로 일대에 희미하게 감돌던 미약한 신성력이 순식간에 일소(一掃)되었으니 당연하다. 아마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적지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 상황에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찰그락.
"음?"
비스듬히 박혀 있던 붐크레프트가 연달아 발생했던 지면의 진동에서 밀려나와, 땅바닥에 쓰러지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낸 것이었다.
"저건... 붐 크레프트?"
그것을 보고도 일단 철수 해야된다고 생각한 케이는 쓰러진 헬켈베로스의 시신과 같이 땅에 쓰러진 붐크레프트도 간단 손짓으로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손짓하며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루시퍼."
부름에 응답하듯, 결계 안쪽 상공에서 활공하며 대기하고 있던 루시퍼가 순식간에 그의 곁으로 내려왔다. 케이는 익숙하게 루시퍼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그가 떠난 자리를 대신하듯, 케이가 설치한 거대한 은폐의 결계는 변함없이 수메르로를 감싸고 있었다.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과 사라진 신성력의 공백이 남긴 불길한 정적만이 폐허 위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