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불안정한 각성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식의 심연에서 떠오르듯, 현경은 아득한 감각 속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마법진의 강렬했던 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싸늘한 금속 바닥의 감촉만이 등 뒤로 전해졌다.
누워 있던 그의 몸이 가늘게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굳게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근만근 무거운 듯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흐릿하고 뿌연 시야 속으로 처음 들어온 것은 복잡한 기계 장치와 정체 모를 고대 유물이 어지럽게 뒤섞인 듯한 낯선 천장의 모습이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 시도했지만, 마치 두꺼운 납 덩어리를 짊어진 듯,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낯설고 무거운 감각에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깨질 듯한 격렬한 두통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단편적인 영상과 격렬한 감정들이 거친 파도처럼 그의 의식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왔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절망적인 풍경, 영혼마저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던 압도적인 황금빛 불꽃의 바다, 자신의 몸을 꿰뚫던 그 뜨겁고도 차가운 감각, 그리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스러져가던 어떤 고결한 기사의 마지막 모습.
그것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온전히 자신의 기억인지 아니면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된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수백 개의 퍼즐 조각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뒤섞여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낯선 환경, 낯선 감각, 정체 모를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기제였다.
그때, 얼음장처럼 차갑고 낮은, 감정 없는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려왔다.
"일어났나."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칠흑 같은 로브를 온몸에 걸치고 서릿발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잠들기 직전, 혹은 지옥이라 불렸던 그곳에서 마주쳤던,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을 찍어 눌렀던 바로 그 불길한 존재. 기억의 편린 속에서 느껴졌던 공포감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현경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는 마치 위협받는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며,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제어하기 힘든 몸으로 필사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하려 애썼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상대에게 고정되었다.
"넌... 누구냐. 정체가 뭐지? 여긴 어디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목이 잔뜩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질문을 뱉어냈지만, 목소리는 감출 수 없는 불안과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기억은 여전히 뒤죽박죽 혼란스러웠고,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마치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부러지지 않은 검처럼, 날카롭게 상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쉽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살아남고 말겠다는 독기가 어려 있었다.
케이는 현경의 그런 격렬한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그의 상태를 관찰하듯 살폈다.
외견상으로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육체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몸의 근육과 의식적으로 억누르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불안정한 영혼의 파동은 부활 의식이 완전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헬 리턴 아티팩트는 영혼을 새로운 육체에 강제로 결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안에 복잡하게 뒤엉켜버린 이질적인 존재들 – 헬켈베로스의 어두운 잔재와 방대한 에너지를 품은 지옥로, 테리우스로부터 계승된 힘과 기억 – 까지 완벽하게 정화하고 통합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지금 현경의 영혼은 마치 세 가지 색의 물감이 위태롭게 뒤섞인 상태와 같았다.
"나는 케이. 그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널 꺼내온 자다. 여긴 외부와 격리된 내 개인 작업 공간이지."
케이는 불필요한 수식이나 감정적인 설명은 모두 생략하고, 간략한 사실만을 기계처럼 전달했다.
"네 상태는... 네 스스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겠지만, 결코 정상이 아니다. 영혼이 극도로 불안정하고, 최소 두 개의 다른 존재의 잔재와 뒤섞여 있어. 이대로 방치하면 머지않아 네 영혼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에게 완전히 잠식당하게 될 거다."
케이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부활 의식의 격렬했던 여파로 검게 그을린 자국과 함께 여전히 불길하게 남아있는 헬켈베로스의 검은 잔재 에너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현경 자신의 몸에서도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규칙적으로 테리우스의 것과 유사한 성스러운 황금빛 기운과 헬켈베로스의 어둡고 탁한 기운이 격렬하게 충돌하듯 명멸하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불안정한 전장이 되어버린 듯했다.
"뭐... 뭐라고? 영혼 붕괴? 잠식? 그게 무슨!"
현경은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과 케이의 설명을 연결 지으며 혼란에 빠졌다.
케이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영혼 붕괴', '잠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원초적인 공포와 섬뜩함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미 내적으로도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힘의 파편들이 몸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듯했고, 머릿속을 끊임없이 헤집고 들어오는 낯선 기억과 격렬한 감정들은 그를 미치게 만들기 직전이었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네 안에 폭풍처럼 뒤섞인 힘과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 그것들을 네 의지로 완전히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것만이 네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자아의 소멸이라는 결말을 맞게 될 거다."
케이는 현경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정심이나 연민보다는, 냉혹하리만치 객관적인 현실 인식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냉정하게 진단 결과를 통보하듯이.
"내가... 왜 당신 말을 믿어야 하지? 다짜고짜 나타나서 날 공격하고 제압하고, 이제 와서 이름 하나 달랑 알려준 당신을!"
현경은 여전히 솟구치는 불신과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는 이 낯설고 위험해 보이는 세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하고 차가운 존재 앞에서 쉽사리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뼈저리게 겪어온 가난과 배신, 그리고 폭력의 기억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을 뿌리내리게 만들었다.
케이는 잠시 침묵했다. 현경의 격렬한 불신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믿든 말든 그건 네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네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케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살고 싶다면, 내 말을 싫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거다. 네 여동생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더더욱."
여동생.
그 존재를 떠올리는 순간, 현경의 얼어붙었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혼란스러운 기억의 파편 속에서도, 유일하게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던, 지켜줘야만 했던 작고 약한 여동생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래, 동생을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고통이나 치욕이라도 견뎌낼 수 있었다.
현경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피가 나도록 꽉 쥐었다.
그의 영혼 안에서 테리우스에게 물려받은 고결한 기사의 의지와 생존에 대한 절박함, 그리고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책임감이 서로 뒤섞이며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의 여파로 그의 몸 주위로 다시금 황금빛과 검은빛의 불안정한 에너지 파동이 불꽃처럼 격렬하게 타올랐다.
이 영문 모를 자는, 분명 여동생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현경은 동생이라는 단어 앞에서 섣불리 저항할 수 없었다. 마치 목줄을 잡힌 것처럼, 정곡을 찔린 듯 그는 분함에 부들부들 떨며 주먹을 쥐었다.
"크윽... 아악!"
현경은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내부의 고통과 주체할 수 없는 혼란에 신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격통이었다.
케이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마치 실험 대상을 관찰하듯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불안정한 각성. 예상했던 시나리오였지만, 앞으로 현경이 겪어야 할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명백히 예감하게 했다. 그의 영혼과 육체를 안정화시키고, 새로운 힘을 통제하기 위한 체계적인 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케이는 문득 오두막 밖에서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레나를 떠올렸다. 오빠의 생사조차 모른 채 6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온 소녀였다.
"우선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네게 일어난 변화, 네 새로운 몸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거다."
케이는 여전히 차가운 어조로 말하며, 어디선가 꺼낸 듯 기본적인 의복과 물이 담긴 병을 현경에게 건넸다.
그의 방식은 지극히 투박하고 일방적이었지만, 지금의 케이가 혼란에 빠진 현경에게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최선이었다.
현경은 여전히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극심한 갈증과 피로감에 케이가 건넨 것을 말없이 받아들었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단 하나뿐인 동생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그는 이 굴욕적이고 낯선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현경은 케이가 건넨 낯선 소재의 의복으로 갈아입으며, 문득 자신의 손에 비친 머리카락 색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갈색이었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깊고 어두운 검은색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내 머리가... 왜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한 거지? 이것도 당신 짓인가?"
그의 날카로운 물음에 케이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기계처럼 답했다.
"헬켈베로스의 육체를 기반으로 네 몸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그 마수의 특성이 일부 발현된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네 영혼이 완전히 안정화되지 않는 한, 앞으로 또 어떤 예측 불가능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더 일어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면서 케이는 다시 벽의 수납공간에서 단순한 디자인의 얇은 금속테로 된 안경을 꺼내 현경에게 건넸다.
"이걸 써라. 일시적이지만 네 안에서 날뛰는 불안정한 에너지를 어느 정도 억제하고 제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정신을 집중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테고."
"안경? 난 시력은 좋아. 눈이 나쁘지 않은데 이걸 왜 써야 하지?"
현경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안경을 받아들었지만, 선뜻 쓰지는 않고 미심쩍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태어나서 안경 같은 걸 써본 적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경고하는데, 쓰는 게 좋을 거다."
케이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한층 더 낮고 위압적으로 변했다.
"지금 네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아. 네 의지와 상관없이 네 안의 힘이 폭주해서 너 자신을 파괴하거나, 혹은 네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지도 몰라. 이 안경은 그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폭주. 파괴. 자아 붕괴.
그 섬뜩한 단어들은 현경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상태인지를 냉혹하게 각인시켰다.
그는 마지못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집어 들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안경을 쓰자, 신기하게도 머릿속을 끊임없이 어지럽히던 혼란스러운 감각들과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약간이나마 잔잔하게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족쇄에 갇힌 듯한 답답하고 부자유스러운 감각도 느껴졌다.
"이걸로... 정말 괜찮아지는 건가? 믿을 수가 없는데."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임시방편일 뿐이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따라나와라. 밖에서 널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케이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불필요하다는 듯, 작업 공간의 출입구를 향해 먼저 걸어갔다.
현경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케이의 뒤를 따랐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케이에 대한 깊은 의심과 불안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동시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람'에 대한 희미하지만 강렬한 기대감도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 정말 동생일까?
복잡한 구조의 숨겨진 통로를 지나 마침내 낡은 오두막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을 때, 현경은 문 바로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하게 서성이는 소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윤기나는 갈색 머리를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얼굴에는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소녀.
그녀는 문이 열리며 케이가 먼저 나오고 그 뒤를 잇따라 현경이 나타나자마자 숨을 멈춘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꿈을 꾸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 오빠? 정말... 오빠 맞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녀가 그를 불렀다.
오빠.
그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웠던 호칭에 현경은 잠시 현실 감각을 잃고 멍해졌다. 그의 기억 속 여동생 레나는 분명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작고, 늘 그의 뒤에 숨던 아이였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자신과 키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익숙한 이목구비와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그 눈빛.
현경은 자신의 심장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네가... 내 동생이라고?"
현경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소녀, 레나는 더 이상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현경에게 달려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무려 6년이었다.
그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괴물에 먹혀 헤어진 후,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절망했던 오빠가 기적처럼 살아서, 드디어 무사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커다란 눈에서는 그간의 슬픔과 그리움, 안도감이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봇물 터지듯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오빠! 어디 갔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보고 싶었어! 정말...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흑... 흐윽...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현경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동생을 마주 안았다.
아직도 눈앞의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지만, 품에 안긴 소녀의 온기와 가녀린 어깨의 떨림, 그리고 뜨거운 눈물은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단 하나뿐인 혈육임을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리고 기적 같은 재회와 전혀 설명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동생의 온기와 눈물은 얼어붙었던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강하게 녹이며 울렸다.
그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예전 늘 그랬던 것처럼 동생의 등을 서툴지만 다정하게 토닥이며 간신히 말했다.
"그래... 나 여기 있다.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오빠가 여기 있잖아... 미안하다, 오빠가 너무 늦었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말을 저도 모르게 내뱉으며, 한참 동안 레나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오두막 앞 작은 공터에는 두 남매의 흐느낌만이 가득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재회의 감격과 슬픔을 나누던 남매는, 꽤 시간이 흐른 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케이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작게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겨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여전히 눈물범벅이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현경은 여전히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훌쩍 자라버린 동생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넌 왜 이렇게... 훌쩍 컸지?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고, 이게 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 좀 해줘.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쏟아지는 현경의 질문 세례에 레나는 눈물을 소매로 애써 닦으며, 여전히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오빠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오빠...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때 그 괴물한테 삼켜지고 헤어진 지 벌써... 내 기준으로는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뭐? 유... 6년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돼!"
현경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빠져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의 머릿속 시간 감각은 여전히 동생과 헤어졌던 바로 그 어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6년이라니.
"응... 나도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땐 믿기지 않았어. 케이 님께 들었는데, 우리가 그 괴물 뱃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는 과정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휘말린 '시공의 폭풍'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뒤틀렸다고 했어. 그래서 나만 먼저 이곳 세계에 도착하게 된 거야. 오빠보다 무려 6년이나 빨리..."
레나는 충격으로 굳어버린 현경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하지만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 후로 6년 동안... 난 계속 여기서 지냈어. 오빠가 너무 많이많이 보고 싶었지만, 케이 님이 언젠가 오빠를 꼭 찾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그걸 믿고 꾹 참고 견뎌왔어. 처음 몇 달은 매일 밤 혼자 울기만 했지만, 지금은 케이 님께 도움을 받아서... 기초 훈련도 받고, 마법이라는 것도 배우고, 지금은... 운 좋게도 마법사가 되어서 카오스포지 아카데미라는 제국 최고의 학교에 다니고 있어..."
"마법사...? 아카데미...? 시공의 폭풍...? 6년...?"
현경은 멍한 표정으로 레나가 쏟아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힘겹게 되뇌었다.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빚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평범한 남매였는데, 눈을 떠보니 다른 차원, 6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차, 그리고 동생은 마법사가 되어 학교에 다닌다니.
마치 거대한 장난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그럼... 지금 네가... 열여덟 살이라는 거야? 나보다 한 살 많다고?"
현경은 깊은 혼란과 함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열두 살의 어린 아이였던 여동생이, 이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 감각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기분이었다.
"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현경은 잠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레나가 쏟아낸 믿기 힘든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깊은 혼란과 충격이 어려 있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려는 냉철한 이성의 빛이 스쳤다. 테리우스에게 받은 기억의 영향일까, 아니면 원래 그가 가진 기질 때문일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모든 일의 흑막으로 보이는 케이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당신이 설명할 차례야, 케이. 케이라고 했지?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우리 남매가 왜 이곳으로 와야만 했고, 이 터무니없는 시간의 간극은 대체 뭐지? 당신이 이 모든 일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명확하잖아."
그의 질문은 이전의 감정적인 반응과는 달리 조용했지만, 상대방의 답변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압박하는 듯한 무겁고 날카로운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그는 차가운 이성으로 이 난국을 돌파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상태는 완벽히 숨길 수 없는 듯, 그가 착용한 제어용 안경알 안쪽의 동공이 간헐적으로 위협적인 붉은 빛을 발하며 명멸했다.
케이는 현경의 예상외의 차분함 속에 숨겨진, 얼음 송곳 같은 날카로움을 정확히 읽어내며, 여전히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그를 마주했다.
그 순간 작은 오두막 변두리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